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전례와 미사에 대해 남긴 11가지 깊은 말씀…



"그 땅의 언어와 함께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이었다. 이 보편적인 언어인 라틴어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 바오로 6세의 영도 아래 로마 가톨릭 교회인 보편적 교회를 위한 보편적 언어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합당하게 선택하신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4. 10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전례와 미사에 대해 남긴 11가지 깊은 말씀…

Canterbury Tales, 2013. 1. 17 기사:


테일러 마샬 박사 Dr. Taylor Marshall 작성


여러분,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저는 지난 세월 동안 교황님의 전례와 거룩한 미사에 관한 생각을 읽으며 큰 즐거움을 느껴왔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최고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에도 전례와 성찬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가 되기 전에도, 참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전례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분이 보여주신 솔직함과 명확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올린 ‘거룩한 미사 중 박수 치는 것에 대한 교황님의 질타’에 관한 글이 인기를 끌어, 여기 미사에 관한 라칭거의 ‘일침’ 열한 가지를 더 소개합니다. 교황 성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주의 깊게 읽고 곰곰이 음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시간 나실 때 책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전례 개혁가들이 만들어낸 ‘조작된, 천박한 산물’에 대한 라칭거의 견해

전례 개혁은 구체적인 실현에 있어서 그 기원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부활이 아니라 파괴였습니다. 끊임없는 발전의 열매인 전례 대신, 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전례를 세워 놓았습니다. 성장을 거듭하며 살아 움직이는 본질적인 과정을 버리고, 조작된 산물을 대체물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수세기를 거쳐 살아 움직이며 유기적으로 성숙해 온 발전을 이어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것을 기술적 생산 방식으로 대체하여, 인위적으로 꾸며낸 당장의 천박한 산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라칭거, Revue Theologisches, 제20권, 1990년 2월, 103–104쪽)


라틴 미사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부당하게 ‘나병환자’처럼 취급받는 것에 대한 라칭거의 견해

“전례 문제에 대한 참된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1970년까지 유효하게 사용되었던 전례 형식 [전통 라틴 미사]에 대한 금지가 해제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날 이 전례의 지속적인 존재를 옹호하거나 이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병환자처럼 취급받습니다. 여기서 모든 관용은 끝납니다. 역사상 이런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의 전체 과거를 경멸하고 금지하는 셈이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떻게 현재의 교회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전례의 정신, 2000)


전례의 타락과 ‘전례 조작자들’에 대한 라칭거의 견해

"우리의 전례는 퇴보하여, 전례 제작자 집단에게 일시적인 성공을 안겨주는 쇼로 전락했으며, 유행의 경박함과 유혹적인 도덕적 격언에 밀려 종교를 흥미롭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례에서 영적인 쇼를 펼치려는 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더 뚜렷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임재 안에서 모든 '행위'는 무의미해지는데, 오직 이러한 만남만이 우리에게 존재의 참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라칭거 추기경이 클라우스 감버 몬시뇰의 『로마 전례 개혁』 프랑스어 번역본 서문, 1992년)


라칭거의 '전례의 해체'에 대한 견해

"저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교회의 위기가 상당 부분 전례의 붕괴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주요 사건들: 회고록 1927-1977)


라칭거, ‘자작 전례(Homemade Liturgy)’에 대한 비판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전례에 내재된 '창의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전례의 풍요로움과 비교하면 참으로 빈약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체 제작 전례를 만든 사람들은 참여자들보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 더디게 반응합니다..." (신앙의 축제, 67-68쪽)


라칭거는 라틴 미사를 '가장 거룩하고 숭고한 소유물'로 규정했다

“저는 전통 전례는 그것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훨씬 더 관대하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왜 위험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지금까지 가장 신성하고 고귀한 소유물로 여겨왔던 것을 갑자기 엄격히 금지하고, 그것에 대한 갈망을 노골적으로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그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라칭거, 『땅의 소금』(1997))


미사에서 창의적인 "집전자"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라칭거의 견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전례 없는 성직주의화였습니다. 이제 사제—그들이 요즘 ‘집전자’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가 전례 전체의 실제적인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바라보고, 그에게 반응하며, 그가 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의 창의성이 전체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라칭거, ‘창의적인 전례 계획’의 위험성에 대하여

“놀랍지 않게도, 사람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이 역할을 축소하려고 온갖 전례적 기능을 여러 개인들에게 분배하고, 전례의 ‘창의적인’ 기획을 자기 나름의 ‘기여’를 하고자 하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집단에게 맡깁니다. 점점 더 하느님은 그 그림 속에서 사라지고, 점점 더 중요한 것은 여기 모인 인간들이 하는 일이며, 그들은 ‘미리 정해진 틀’에 자신을 종속시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례의 정신, 제3장)


라칭거가 미사 중 사제가 신자들을 마주 봐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논하다

“사제가 신자들을 향해 돌아선 것은 공동체를 자기 안에 갇힌 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겉모습으로는 더 이상 앞과 위로 열려 있지 않고, 스스로 안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동쪽을 함께 향하는 것은 ‘벽을 향한 집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제가 ‘신자들에게 등을 돌렸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사제 자신은 그렇게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회당에서 회중이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바라본 것처럼,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회중은 함께 ‘주님을 향해’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전례의 정신, 제3장)


라칭거, 사제와 신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반면에, 성찬 기도 동안 공동체가 함께 동쪽을 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사제를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전례의 정신, 제3장)


라칭거, 십자가를 사제로 대체하는 ‘부조리한 현상’에 대하여

“제대 십자가를 옆으로 옮겨 사제를 방해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지난 수십 년 동안 나타난 진정으로 부조리한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십자가가 미사 중에 방해가 됩니까? 사제가 우리 주님보다 더 중요한 존재입니까?” (전례의 정신, 제3장)




"이제 많은 자들이 주님께서 내리신 그들의 지도자, 교황에 맞서게 될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문제는 그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의 자리를 통해 인간들에게 주신 율법이라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이 잘못된 율법이 성자의 교회를 통해 지상의 전통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10. 6


“바빌로니아의 죄로 인한 바빌로니아의 멸망 때문에 세상에는 많은 새로운 말들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아, 세상 모든 것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너희는 자신의 모국어로 된 번역본만 있으면 외국을 방문하여 성자의 교회라면 어느 곳에 방문하더라도 성자께서 선택하신 사제들이 바치는 미사를 편안하게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딸아, 네가 미국을 떠나 프랑스로 간다면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나의 딸아, 네가 라틴어를 분간할 수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지고 성자의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에 불려가는 은총을 받은 모든 이들은 세상의 아름답고 공통된 언어의 유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저들이 너희에게서 이 말을 빼앗았다고 성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간들이 모독하더라도 성자와 함께 인내하며 기다리거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4. 10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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