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고찰...



“여성에게 내재된 신비는 그녀의 가장 큰 자산이다. 사탄이 여성의 정체성을 빼앗으려 하는구나. 성경은 예언을 통해 마지막 때에 여자가 남자처럼 되려 하고, 남자의 옷을 입고, 남자의 빵을 먹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야 4:1 참조]”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2. 5. 10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천사들의 노래> (1881년 작), 위키미디어 공용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고찰...

다음 인용문들은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한 국가의 쇠퇴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징후는 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일을 하도록 권장되고, 또 강요받는다는 점에 주목해야합니다. 미국 여성들 중 일부는 남녀 간의 직업 장벽을 허물었다는 사실에 승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가가 그들의 여린 손에 삽이나 도끼를 쥐여주고 숲을 갈고 도랑을 파도록 강요할 때에도 그들이 여전히 승리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그들을 버리고 홀로 아이들을 부양해야 할 때에도 그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여자가 '자유로워야' 한다면 남자도 자유로워지는 것을 반대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성별에 따른 예의나 친절을 더 이상 받지 못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남자들에게 밀려나고, 붐비는 인도와 엘리베이터에서 남자들에게 떠밀려 길에서 밀려날 때에도 ‘충만함’을 느끼길 바랍니다. 거울을 볼 때 지친 얼굴과 원망으로 가득한 표정을 보고도 기뻐하며, 월급봉투로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 테일러 콜드웰, 「그들은 이브의 위대한 속임수를 망치고 있다」, American Opinion, 1970년 9월호, p. 8.


"여성 해방이라는 개념은 남녀 간의 뿌리 깊은 적대감, 시기심과 모방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여성은 그저 희화화된 모습, 가짜 존재로 전락합니다.”

- 러시아 철학자 베르댜예프, 엘리엇의 『Let Me Be a Woman』, p. 158에서 인용.


"많은 것을 오해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입장은 세밀하고 포괄적인 이데올로기적 규율 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들은 반페미니스트들 또한 폭군을 꿈꾸는 자들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대로 반대 세력을 재창조합니다. 사실, 반페미니즘이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며, 서로의 다름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러한 차이점을 인간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간주하여 사회적 태도와 제도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회는 철저히 성차별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반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전통적인 남녀 관계를 단순히 지배와 복종의 문제로 보는 현대 이데올로기의 편협함을 버리고, 인류가 실제로 성, 자녀, 가족 생활 등을 다뤄온 방식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반페미니즘이란, 전례 없는 규모의 파괴와 살인을 초래한 시대의 편협하고 파괴적인 환상 중 하나를 거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물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 Jim Kalb


"여성은 자신의 아기를 품에 안아보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존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가족이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를 견뎌내고 초월하기 전까지는 그토록 갈망하는 자신감을 얻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 책임감의 무게는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서류 작업과 업무 지시를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게 할 정도입니다."

- 대니엘 크리텐든, ‘어머니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들’, 74쪽.


“세상에는 강인한 여성이 충분히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드러운 여성입니다. 거친 여성은 충분히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한 여성입니다. 무례한 여성은 충분히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련된 여성입니다. 명성과 부를 가진 여성은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심 깊은 여성이 더 필요합니다. 탐욕은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에게는 선함이 더 필요합니다. 허영심은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에게는 미덕이 더 필요합니다. 인기는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에게는 순수함이 더 필요합니다."

- Margaret D. Nadauld,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들’, Ensign, 2000년 11월호, 15쪽.


"나는 평화롭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정치와 혼란을 싫어한다. 우리 여성들은 통치에 적합하지 않으며, 훌륭한 여성이라면 이러한 남성적인 직업들을 싫어해야 한다."

- 빅토리아 여왕



"남성에 의한 자신들에 대한 억압을 끊임없이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그 억압의 정확한 본질은 제대로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은 정작 자신들이 어떻게 여성적인 여성들을 억압해 왔는지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여성에게 가정적인 삶이 그녀를 남성보다 열등한 기생충으로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억압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고 싶어 하는 여성에게 직장에서 성취하는 만큼만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억압입니다."

- F. 캐롤린 그라글리아, 페미니즘에 대한 간략한 반박, 349쪽.


"전통적으로 여성이 집을 온화하고 생기넘치게 만드는 비결은 청소나 빨래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진정한 비결은 가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의 애정은 부드러운 소파 쿠션, 깨끗한 침구, 맛있는 음식에 담겨있었고, 추억은 잘 채워진 찬장과 식료품 저장실에, 여인의 지성은 집의 질서와 건강함 속에 있었으며, 여인의 유쾌한 성격이 집안의 빛과 공기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몸을 통해서만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집을 자신의 몸의 연장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과 맺는 관계의 일부는 그녀가 만든 집이라는 물리적 매개체 속에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나 자신의 경험이 확신하게 하는 것은, 좋은 집을 만드는 다른 방법은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집과 가정생활에 대한 태도를 그 전통적인 여성의 태도에 본받는 것만이 길이라는 것입니다. 광고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가사노동과 가사노동자를 타락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잡지와 신문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논의는 늘 정형화된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가사일을 지루하고, 좌절스럽고, 반복적이며, 지성이 없는 고된 노동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가정도 꾸리고, 변호사 일도 하고, 가르치는 일도 하고, 그 외에도 저임금이든 고임금이든 온갖 종류의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장담하건대, 어리석은 고된 노동의 경험에 가장 익숙한 사람들은 바로 변호사들입니다.)" - 셰릴 멘델슨, 『Home Comforts: The Art and Science of Keeping House, 집의 편안함: 살림의 예술과 과학』, 9-10쪽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알게 된 페미니즘 운동은 근본적으로 “사기”입니다. 그것은 점성술이나 초심리학만큼이나 허위와 부정확함,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료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것이 반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운동에 대한 정확성이나 정직성에 대한 어떤 기준도 결코 적용되지 않습니다. 과장과 기만은 결국 성공의 공식이 되고, '동료 평가'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만연한 잘못된 정보에 학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페미니스트 지망생들(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 카밀 파글리아, 일레인 쇼월터, 에린 피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등)은 '여성의 적'으로 낙인찍히고 운동에서 배척하였습니다." - Robert Sheaffer of Patriarchy.com.


"최근 철도 열차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여성의 ‘권리’의 결과를 공정하게 보여줍니다. 한 여성이 혼자 객차에 들어섰는데 모든 좌석이 이미 차 있었고, 차장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뒤 문을 닫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자리를 찾다가 마침내 근처에 있던 한 노인에게 다가가 “신사께서는 숙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다소 유머 감각이 있는 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인, 제가 늘 그렇듯이 기꺼이 넘겨드리겠습니다만, 먼저 정중한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인께서는 현대 여성 인권 이론을 지지하십니까?" 그녀는 강렬한 에너지로 몸을 곧추세우며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단호히 말씀드립니다. 그 고귀한 대의에 헌신하는 것이 저의 영광임을 알려드립니다.” “좋습니다, 부인,”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달라졌군요. 이제 당신도 우리 남자들처럼 자리를 얻을 때까지 서 있어야 되겠군요.” 이것은 정확히 시적인 정의였으며, 그들의 부자연스러운 주장들의 운명을 그대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그들을 남자들끼리 서로 대하는 방식대로 대할 것이며, 결국 “각자도생, 뒤처진 자는 악마가 데려간다”는 상황이 될 것이다. … 이 실험에서 나타날 사회는 여성을 언제나 야만인들 사이에서 그녀가 차지했던 위치, 즉 더 강한 동물의 가정 노역꾼으로서의 위치에 놓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 불운한 경쟁에서 패배하고 멸시받으며, 단지 욕망을 충족시키고, 게으름을 달래고, 고된 노동을 시키고, 야만적인 주인들의 저주와 매질을 받기 위해 용납될 뿐이다." - 로버트 L. 다브니, "Women’s Rights Women, 여성의 권리, 여성들", 토론집 4권, 503-504쪽.


"지면이 허락한다면, 이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해로울 뿐만 아니라 자멸적인 행위임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운동의 확실한 결과는 여성들을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의 굴레 아래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육체적 폭력의 멍에 아래 다시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시대와 국가에서 여성이 처했던 상황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여성이라면,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문명과 종교를 제외한 모든 문명과 종교에서 여성은 이러한 운명을 온전히 경험해 왔습니다. 여성의 처지는 남성의 노예였으며, 때로는 애정을 받는 노예였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노예였습니다. 교회 사회, 특히 유럽 사회에서만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얻었고, 여성으로서의 연약함에 걸맞은 존경과 예우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여성의 부러운 지위는 교회 신앙과 봉건 기사도에 기반한 법률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이 두 가지 방어벽을 거부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그녀는 이로써 여성들이 지금까지 찾아왔던 유일한 보호자들을 거부하고, 필연적으로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자초하고 있다." - 로버트 L. 다브니, "Women’s Rights Women, 여성의 권리, 여성들", 토론집 4권, 502-503쪽.




"여인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인은 소유물이 아니라 남편을 돕는 배필입니다. 그렇기에 여인은 남자에게 당당히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집에서 부당한 자기 주장을 펼쳐서는 안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규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탄때문에 눈이 멀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자리잡은 해방감은 사탄이 심어놓은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서는 오직 파멸밖에 얻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성녀 소화 데레사, 1975. 10. 2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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