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아버지들의 모범인 성 요셉을 본받아...



"나의 딸아, 모든 인류에게 알려라. 지상의 가정에서 가장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지상의 여인은 어머니이자 주부로서의 역할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어머니로서 여인은 자녀들의 영혼을 지키는 수호자이며, 남편의 조력자가 되어야 하며, 또한 남편의 육신과 영원한 영혼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여인은 가정에서 모범을 보여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여인은 가정을 지키며 자녀들을 인도해야 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성 요셉, 1975. 7. 15


"너희 나라와 너희 세상은 기도가 끊이질 않는 철야 기도를 바쳐야 한다. 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함께 머무르게 될 것이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참된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많은 가정에서의 본보기는 부족하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뿌린대로 거두게 되리라.

“부모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계명에 대한 지식을 전해야 한다. 이 계명을 저버리는 것에 대한 어떤 변명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영혼과 정신을 단련하여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육신도 단련하여라. 파멸의 진흙탕에 삼켜지지 않도록 하여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5. 3. 18





가정의 아버지들의 모범인 성 요셉을 본받아...

Catholic.org, 2017. 6. 18 기사:


앤드류 그린웰 Andrew M. Greenwell 작성


모든 남성에게 있어서 아버지됨은 하나의 소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날’이 인간 가족의 아버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아버지됨이라는 개념은 훨씬 더 넓은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 ‘아버지됨’이라는 단어는 매우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용어는 하늘과 땅의 모든 아버지됨의 근원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적용될 수 있습니다. (참조: 에페소서 3장 14–15절)


아버지됨은 단순한 생물학적 관계를 훨씬 뛰어넘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성 요셉이 예수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데서 이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9년에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성 요셉은 예수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며, 예수님의 아버지는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됨을 온전히, 완전하게 살아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Umbra Patris’, 즉 ‘하느님 아버지의 그림자’라 불리는 성 요셉의 품성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의 아버지됨이 어떻게 하느님과 성부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아버지됨의 특성은 오늘날 미국인들이 기리는 바로 그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 요셉에 대한 전통적인 호칭기도와 교황들의 저술을 바탕으로, 우리는 인간 아버지됨의 덕목들을 간략히 그려보고자 합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성 요셉에 관한 회칙 ‘Quamquam pluries’ 제4항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의 아버지들은 요셉 안에서 아버지로서의 배려와 경계심을 가장 잘 구현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또한 성 요셉에 대한 묵상에서 이를 확인하며, 성 요셉은 “인간 가족이자 동시에 거룩한 가족 안에서 아버지됨의 완전한 구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아버지는 정의로워야 합니다. 정의는 모든 아버지가 길러야 하고 실천해야 할 네 가지 주요 덕목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는 자신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자신의 가정 구성원들을 정의롭게 대합니다. 성경은 성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며(마태오 1:9), 그는 마리아의 ‘놀라운’ 모태를 정의롭게 다루고자 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구세주의 수호자』 제3항) 성 요셉은 정의로웠지만 자비의 공정함에도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는 정의를 적용함에 있어, 의로운 사람은 모든 정상 참작 사유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는 성신에 의한 마리아의 뜻밖의 잉태와 같은 상황까지 포함됩니다.


아버지는 정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 요셉을 ‘지극히 정결하신 배필’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는 영웅적인 정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남성은 정결한 삶으로 부름받고 있습니다. 혼인 안에서의 정결은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충실한 혼인적 신의를 의미합니다. 더 넓은 의미에서 이는 인간 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철저히 따르는 것을 뜻하며, 여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성행위, 인공 피임,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현대의 병폐를 거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혼인 관계와 가정을 파괴하며 본질적으로 생명에 반하는 것이기에 덕 있는 남성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순결은 영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며, 마음이 깨끗한 자만이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5:8)


아버지는 신중함을 실천합니다. 성 요셉은 그의 축일을 기념하는 로마 미사 경문 서문에서 “가정의 가장으로서, 충실하고 신중한 종”으로 세워졌다고 기도합니다. 신중함은 “행동 속의 올바른 이성”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이를 ‘덕의 마부’(auriga virtutum)라고 불렀습니다. 신중함을 올바르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숙함, 절제, 자연적 도덕법에 대한 순종, 그리고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아버지는 강인함을 드러냅니다. 아버지가 보여주는 강인함은 반드시 육체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도덕적이고 영적인 힘, 즉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바른 일을 하고 유혹이 다가올 때 악을 피할 수 있는 인간 품성의 내면적 힘, 에너지, 활력, 도덕적 인내력을 뜻합니다. 요약하자면, 아버지는 역경 속에서도 선을 행할 수 있는 ‘인내의 덕’과, 유혹받을 때 악을 피할 수 있는 ‘절제의 덕’을 지닌 존재입니다.


아버지는 하느님께,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순종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종은 모든 인간 삶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가족에게도 일종의 순종을 바쳐야 합니다. 아버지가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에페소서 5장 21–25절 참조)을 기억할 때, 그 권위는 몸 전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데 질서지어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의무에 대한 순종은 아버지가 자신의 유익을 아내와 가족의 유익을 위해 복종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는 성 요셉처럼, 마리아에게 “남편으로서의 자기 봉헌”을 아낌없이 바친 것처럼,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내어줍니다. (『구세주의 수호자』 제20항)


아버지는 하느님과 가족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성 요셉은 하느님께 충실하였고, 자신의 종교적·가정적 의무를 철저히 이행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삶이라는 신앙의 순례 여정 속에서 요셉은… 끝까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했습니다.” 혼인의 선물 가운데 하나인 충실함은 자녀와 성사와 함께 중요한 요소이며,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의 모든 힘을 다해 이를 지켜야 합니다. 그는 죽음이 자신과 아내를 갈라놓을 때까지 충실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깊은 충실함으로 지켜나갑니다.


아버지는 인내심을 지녀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 우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라상스 신부의 저서 『인내』에서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 요셉의 인내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시험받았으며, 그 모든 가운데서 요셉은 침착하고 순명하는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시련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의 덕을 정화하시는 도가니임을 이해했고, 십자가의 길만이 천국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으며, 의로운 자는 모두 그 길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영혼을 방문하실 때에도 당신의 십자가를 함께 가져오십니다.”


아버지는 가난을 사랑합니다. ‘물질, 물질, 물질’은 아버지의 삶에서 중심이 되지 않으며, 그는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를 거부합니다. 하느님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맺어진 ‘자선의 유대’에 불타는 아버지는 영적 가난을 지니게 되며, 이는 성가정의 “베들레헴의 가난, 이집트로의 피난, 그리고 나자렛 집에서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구세주의 수호자』 제21항) 성 요셉은 우리에게 물질적 부가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물질적 부는 인간의 영적 부분을 지지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요셉은 적은 소유에 만족하며, 그로 인해 따르는 시련을 견뎌냈습니다.” (『콴콴 플루리에스』 제4항)


아버지는 일하는 사람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가 성 요셉에 대해 말한 바는 모든 아버지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는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에게 있어 ‘일’은 “사랑의 일상적 표현”입니다. 성 요셉처럼 목수이든, 금융인이든, 그 사이의 어떤 직업이든, 근면과 노동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자연을 변화시키고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적 선”으로서의 역할은 인정받아야 합니다. (『구세주의 수호자』 제22항)


아버지는 가정생활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이 점에서도 아버지는 성 요셉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성 요셉은 “아버지의 권위로 다스린 신성한 집의 수호자”로서, 그 집 안에는 “갓 태어난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콴콴 플루리에스』 제3항)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성 요셉은 보편 교회의 수호성인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성 요셉에 관한 회칙에서 성 요셉을 “순결의 모범이자 수호자”라고 묘사했습니다. (『콴콴 플루리에스』 제3항) 지극히 정결하신 배필인 성 요셉은 자신의 순결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순결도 지키고 보호했습니다. 그의 모범을 통해 우리는 순결이 위대한 선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이는 혼인이나 질서 있는 성생활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큰 선을 더 큰 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인간 가족의 기둥입니다.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가정 안에서 어떤 일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는 고통받는 가족에게 위로를 주고, 병든 이에게 희망과 돌봄을 제공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육체적 생계를 제공합니다. 성 요셉이 “자신의 노동으로… 음식과 의복에 필요한 것을 꾸준히 벌어들였듯이,” 아버지는 가족의 물질적 필요를 책임지고 충족시켜야 합니다. (『콴콴 플루리에스』 제62항) 능력이 있음에도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아버지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라고 성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의 한 번역에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1티모 5:8)


아버지는 가족에게 영적 양식을 제공합니다. 성 요셉처럼, 아버지는 “혼인 결합과 남녀 간의 인격적 접촉에서 비롯된 깊은 영적 친밀감”을 길러야 하며, 이는 “생명을 주시는 성신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구세주의 수호자』 제19항) 성 요셉처럼, 아버지는 하느님의 인도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침묵의 감각을 기르고 관상의 예술을 배워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성 요셉 노동자 축일에 있었던 교리 교육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의 고요함 속에서 성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오직 하나의 공통된 관심의 중심, 곧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 요셉은 하느님을 묵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는 곧 주님께서 “우리 삶 안에 끊임없이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며, 주님 앞에 “멈추어 대화하고”, “기도 안에서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는 시대의 표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보고 배워라: 여자들은 여자답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애원하리라: 먹여달라, 입혀달라, 조르지 않겠으니 당신의 아내라는 말만 듣게 해주십시오. 이 부끄러운 신세를 면하게 해 주십시오,’ (이사야 4장 1절)

"나의 딸아, 이 간단한 교훈을 일지 말아라. 이 마지막 시대에 여자들은 어머니이자 여성이라는 역할을 벗어던지려 할 것이다. 여자는 사탄의 인도에 따라 그것을 버리고 자녀를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 사악하고 혐오스런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 여자는 화를 입을 것이다! 여자들은 영원한 저주와 지옥으로 가는 길 위에 서있다. 회개하여라, 여인들아.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길을 잃을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5. 3. 18


“그들은 과거에 아버지를 공경하며 행했던 것처럼 다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길을 따르며, 남편의 말을 듣고 가정 안에서 남편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많은 가정의 본보기는 매우, 매우 부족하다.

“그러므로 이제 남편들은 아내에게 사랑으로 대하되, 아내를 가르쳐야할 것이다. 많은 아내들이 길을 잃었구나.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하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가정의 본보기가 매우 부족한 것을 보고 있다…

“여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큰 징벌이 너희에게 다가오고 있다. 너희가 여인으로서의 역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큰 징벌 없이 고쳐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정에 분열이 생길 것이다.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어머니들이 하느님의 빛 안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4. 4. 13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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