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죽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찬을 받기 전에 대죄를 고백해야 하는 이유...



"손으로 영성체를 받는 것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하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능하신 성부께서 보시기에 모독이며,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성부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방식들을 계속 따를 때, 너희에게 떨어지는 벌만 더해질 뿐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84. 6. 30


"내 미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라. 미사는 유효하다. 너희에게 이른다. 인간이 미사를 왜곡할 수는 있어도, 미사는 언제나 유효하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합당하게 서품받은 사제가 미사를 집전한다면 그 미사는 여전히 유효함을 명심하여라!”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12. 7


"... 나의 자녀들아, 세상에서 성자의 교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 미사는 거룩한 희생이며, 이는 아직 유효하다.

"나의 자녀들아, 성교회를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고 고쳐서는 안 된다. 전능하신 성부께서 쓰시려 성자께서 너희에게 보내신 성신을 통해 합당하게 서품된 성직자들만이 성자의 성체와 성혈을 너희에게 전해줄 수 있다. 이 때문에 너희를 지켜보는 성자께서 슬픔에 잠겨있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6. 8. 5




영적으로 죽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찬을 받기 전에 대죄를 고백해야 하는 이유...


LifeSiteNews.com, 2018. 7. 30 기사:

피터 크와스닙스키 Peter Kwasniewski 작성

여전히 미사에 참석하는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성체를 무분별하게, 심지어 주님을 영접할 준비와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영성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이전 두 교황께서도 분명히 인정하신 바 있습니다.

때로는, 아니 사실 꽤 자주, 성찬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합니다. 그리고 경험 많은 사제들이 증언하듯이, 그러한 경우에 양심을 정화하기 위한 고해성사에 마땅히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Dominicae Cenae 11)

이 구절이 과소평가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정기적으로—특히 중대한 죄나 대죄를 범했을 때마다—고해성사를 통해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만이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며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양식이 되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한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체는 영혼이 죽은 자들을 위한 치료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이 사랑의 삶을 살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양식입니다. 죽은 자에게 하루 종일 음식을 준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인 삶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 생명의 빵을 받아먹을 때, 그는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는 공적 죄인들(예를 들어 사제나 주교가 낙태 찬성표를 던지는 정치인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행위)에게 그러한 양식을 주는 것은 받는 사람과 그 행위자 모두의 머리 위에 불타는 숯덩이를 쌓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는 모든 교부, 박사, 교황의 만장일치 가르침이며, 이 점에 대해서는 돌려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한 인터뷰에서 바티칸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관광객이나 방문객이거나, 금식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찬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황은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성체를 혀 위에 올려놓는 방식을 다시 도입하여, 이것이 지극히 거룩하신 분, 성체께서 참여하시는 신성한 예식임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와 같은 상황에서는 피상적 신앙의 위험이 매우 큽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자동적으로 성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아가니 나도 가야지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저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면 참여할 수 있는 단순한 사회적 의식이 아닙니다. (『세상의 빛』, p.156)

이 모든 우려의 이유는 아주 간단하며, 트렌트 공의회는 이를 비할 데 없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거룩함 없이는 어떤 신성한 의식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천상의 성찬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특히 사도 바울의 두려운 말씀이 있듯이, 경건함과 거룩함 없이 성찬을 받으러 오지 않도록 더욱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1고린토 11:29) 성찬을 받고자 하는 자는 바오로의 지시, “각자 자기 자신을 살펴보라”(1고린도 11:28)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13회기 7장)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가톨릭 신자들은 “경건함과 거룩함 없이 성체를 영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체를 풍성하게 자주 영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1905년 교황청 공의회성에서 발표한 Sacra Tridentina Synodus 교령에서 권위 있게 답변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교황 성 비오 10세의 뜻과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 교황은 신자들이 제대에 나아가는 것을 꺼리게 만든 얀센주의의 잔재에 대응하여 첫 영성체의 연령을 낮추고, 주님을 자주 영하도록 권장했습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거룩한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는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즉, 고백하지 않은 대죄에 대해 스스로 죄책을 느끼고 있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그는 “올바르고 경건한 의도”를 가져야 합니다. 교령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관례나 허영, 혹은 인간적인 존경심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랑으로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며, 자신의 나약함과 결점을 치유하기 위한 신성한 수단에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의식해야 하며(따라서 형식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됨),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과의 더욱 깊은 일치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때문에(따라서 허영심이나 인간적인 체면 때문에)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그는 고의적인 소죄와 그에 대한 어떠한 애착에서도 자유로워야 마땅하지만, 적어도 대죄에서는 자유로워야 하며, 앞으로 결코 대죄를 짓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Amoris Laetitia》로 인해 야기된 엄청난 혼란 속에서 특히 중요한 점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죄 가운데 계속 살기를 의도한다면, 즉 원래 배우자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민법상 결혼을 하는 등 객관적으로 죄된 상황에 협력하고 있다면, 그는 결코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죄를 짓지 않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영성체를 받는 사람이 반드시 충분한 준비 시간을 갖거나 영성체 후에 감사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준비와 감사는 모두 성체성사의 온전한 은총을 얻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교령에서 언급했듯이, "성사는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좋을수록 더 큰 효험을 발휘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영혼들을 다른 영혼들보다 더 높이시고자 하는 숨겨진 의도를 제외하고, 우리가 제단에 나아가 주님과 일치하는 데 있어 살아 있는 신앙을 실천하고 진정한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잦은 성찬 참여를 통해 성인이 되는 사람들과 매일 주님을 만나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입니다.

간략히 말하자면, 성체성사를 자주 그리고 풍성하게 받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은총의 상태에 있는 것, (2) 올바르고 경건한 의도를 갖는 것, (3) 장래에 죄를 짓지 않겠다는 의도를 갖는 것, 즉 죄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운 것, (4) 적절한 준비와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의 지혜로운 권고를 따른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같은 교령은 이를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성체를 자주 혹은 매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더욱 굳건해지고, 영적 생활은 더욱 풍성히 유지되며, 영혼은 덕으로 더욱 풍요롭게 채워지고, 영원한 행복의 보증은 더욱 확실히 주어진다.”


은총과 순결과 믿음과 헌신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동시에 얼마나 큰 도전입니까!




"이제 많은 자들이 주님께서 내리신 그들의 지도자, 교황에 맞서게 될 것이다. 신앙과 도덕의 문제는 그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의 자리를 통해 인간들에게 주신 율법이라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이 잘못된 율법이 성자의 교회를 통해 지상의 전통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9. 10. 6

"이 사악한 악마가 나의 교회 매우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너희는 성자의 교회를 고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너희의 신으로 나는 너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지시를 내린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6. 8. 21




번역: 성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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