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해서 성자께 드리는 영광을 빼앗거나 해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딸아, 나는 너희와 모든 나의 자녀들에게 온전한 겸손으로 이 말을 전한다. 너희의 어머니인 나 역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도구일 뿐이다. 성자께서는 너희 세상과 아버지의 세상 사이의 중재자로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기로 택하셨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로사리오의 성모님, 1974. 12. 24
"기억하여라, 나의 자녀들아. 나의 어머니께로 오너라. 지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셨던 그 기억 속에서,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나게 창조된 분—죄 없이, 죄의 오명을 지니지 않은 분으로서, 죄 없는 완전한 삶을 사시고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승천하신 분이시다. 어머니만이 너희를 올바르게 인도하실 수 있다. 그분은 너희의 어머니요, 천국의 여왕이시며 지상의 모든 인간의 어머니시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9. 8. 14

뮐러 추기경, 성모 마리아의 공동 구속자 칭호를 수호하다...
Edwardpentin.Substack.com, 2026. 10. 8 기사:
에드워드 펜틴 Edward Pentin 작성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공동 구속자"라는 칭호는 가톨릭 신앙의 정당한 표현이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과장이나 유일한 구속자이자 중개자로서 그리스도의 특별한 위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고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말했습니다.
10월 7일부터 8일까지 로마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 'De Maria numquam satis'("마리아에 대해서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에서, 뮐러 신앙교리성 명예장관은 이 칭호가 "은총으로 이루어진 자유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구원 역사에 있어 보여준 특별하고도 헌신적인 협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협력이 "은총으로 이루어진 자유 의지 안에서" 하느님께서 뜻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뮐러 추기경은 "하느님께서는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아들의 부활을 통해 당신의 구원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한 여인의 자유로운 동의를 전제로 하셨으며, 이로써 온 인류의 구원을 그녀의 순결하고 모성적인 마음에 맡기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피아트'(하느님의 뜻에 따른 응답)를 거부했다면, 우리는 모두 영원히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단순한 수단이나 수동적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원죄 없이 보존하시고 특별한 은총으로 준비하신 한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를 원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협력은 성육신의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인간 본성을 취하여 태어나신 그리스도는, 그 인간 본성이 신성과 위격적으로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그리고 바로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속자이시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
"따라서 마리아도 성육신에 본질적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일 추기경은 개신교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해당 칭호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하며, 그러한 우려는 은총과의 자유로운 협력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신학을 반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동 구속자"라는 칭호는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근본적이고 완전한 의미에서 구원하며, 마리아의 역할은 전적으로 그의 은총에 의존하고 거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공동 구속자"라는 명칭이 후대에 신학적으로 정식화 되었다고 해서 그 내용의 진실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믿어 온 신앙의 내용을 점차 더 정확하고 명확한 용어로 표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리아가 순종적인 믿음으로 하와의 불순종에 응답하는 새로운 하와로서, 구원받은 인간의 모범이자 그리스도의 구원에 협력하도록 부름받은 모든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라고 말했습니다.
뮐러 추기경의 발언은 바티칸이 논란이 된 20페이지 분량의 교리 문서인 Mater Populi Fidelis를 발표한 지 거의 1년 만에 나온 것입니다. 이 문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공동 구속자(Co-Redemptrix)"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공식적인 교회 언어와 전례에서 "항상 부적절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서는 그러한 칭호 사용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협력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 로마
1.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성한 은총과 인간의 협력에 대한 개념의 근본적인 차이
19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한 명이자 튀빙겐 가톨릭 학파의 주요 인물이었던 요한 아담 뮐러(1796~1838)는 그의 대표작인 《상징론》(1832)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수많은 교리적 차이점을 기독교적 인간론에 기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자연적 형상과 초자연적 형상에 대한 교리, 인간 본성을 완전히 타락시키거나 단순히 손상시키는 원죄, 그리고 구세주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한 죄인의 의롭게 됨에 대한 교리를 언급합니다(《상징론》, 서론 18). 서구 기독교의 일치는 죄인의 주관적 의화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객관적 구원 사역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인해 산산조각 났습니다. 핵심 질문은 아담의 죄가 온 인류의 초자연적 은총 상실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타락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질문의 첫 번째 부분에 대해 '예'라고 답하는 데 동의합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영과 의지에 있어 하느님을 닮게 했던 초자연적인 은총을 잃었고, 세상의 유일한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서만 그것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질문의 두 번째 부분에 대해 개신교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에 따라 인간 본성에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답합니다. 이처럼 완전히 부패한 본성 안에서, 죄인은 자연 도덕법의 계명들(로마서 2:15)을 준수할 능력조차 없으며, 적어도 이성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도 없고, 하느님께 감사하거나 그분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로마서 1:20). 아담의 죄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완전히 악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개신교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에 근거하여 인간 안에서 자연과 은총 사이의 혼인적 결합이 실현된다 할지라도, 구속의 은총조차 피조물 안에 있는 하느님의 자연적 형상을 회복시키고 치유하며 고양시킬 수는 없습니다.
개신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는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마귀와 죽음이 나를 위협하는 사자굴에서 나를 완전히 끌어내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때때로 나를 공격하는 사자들을 쫓아내실 뿐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나의 본성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의 행위를 계속함으로써만 확신을 얻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나를 죄와 마귀와 죽음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이라는 개념입니다.
반면에 가톨릭 신자는 구원과 의화의 은총이 초자연적인 신성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과 그 영적, 도덕적 능력을 본래의 선함으로 회복시켜, 모든 것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과 선(善)에 반대되는 죄로의 경향성, 곧 정욕(concupiscence)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죄가 아니라, 완전하고 온전히 치유된 인간 본성에 남아 있는 잔여적 약함에 불과합니다. 의롭게 된 사람은, 특히 선을 행할 때에는, 전혀 죄를 짓지 않습니다(DH 1481).
가톨릭 신앙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유혹에 자유의지로 동의할 때에만 죄를 짓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 유혹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닙니다. 죄로 기우는 성향은 우리가 은총의 도움으로 그것과 싸우도록 남겨진 것이며, 또한 기도와 금식, 영적 수련, 그리고 사랑의 행위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성장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며, 그렇게 하여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에 따라 선을 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로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받도록 하기 위해 남겨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가톨릭 신앙의 진리가 확립되고 그 독특한 특징이 드러나는데, 우리는 이를 인식하고 옹호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경쟁 관계가 없습니다. 리옹의 이레네우스는 이미 당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영지주의자들에 맞서 이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격체들이 그분의 무한한 존재, 그분의 영, 그리고 그분의 무궁무진한 선하심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실 때, 그분께서 무엇을 얻거나 잃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을 하찮게 여길수록 하느님의 은혜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위엄은 우리를 티끌처럼 짓밟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아들은 우리의 비천함을 취하시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당신 안에서 높이시고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완전함은 우리 없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순수한 은혜로 원죄와 개인적인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2. 가톨릭의 은총 협력 개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 사업에서 배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포함시키셔서 성부, 성자, 성신의 친교 안에서 구원 사업과 인류 완성에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협력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실 수 있는 최고의 존엄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축복하신 인간 본성은 하느님을 아는 영적인 행위 안에서 실현되고, 자유로운 인과관계를 통해 도덕적 행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하느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고유한 영역과,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당신의 역사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영역을 구별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심으로써 인간도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협력하게 하십니다. 이때 인간은 구원과 의화의 근원이 되는 제1원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용 아래서 활동하는 제2원인으로서 죄인의 구속과 의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칭의(justification): 죄인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거나 실제로 의롭게 되는 것.) 고린도전서 3장 9절의 말씀, 곧 "우리는 하느님의 동역자들이다"라는 구절이 말하듯이 그러합니다.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물 안에 있는 질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시고, 또한 피조물들에게 원인으로서의 존엄성(ut etiam creaturis dignitatem causalitatis communicet)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중간 원인들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신학대전』 I, q.23, a.8, ad 2)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피조물의 협력이 우리 인간 존엄성의 정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가톨릭 신앙과 개신교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성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Neque hoc est propter definae virtutis: sed quia utitur causis mediis, ut ordinis pulchritudo Serbtur in rebus, et ut etiam creaturis dignitatem causalitatis communicet.'(Summa Theologiae, I, q. 23, a. 8, ad 3). 이는 하느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물 가운데 질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시고, 더 나아가 피조물들에게도 원인으로 작용하는 존엄한 역할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제2원인들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3. 가톨릭 정통 교리를 판별하는 기준으로서의 마리아론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마리아론은 가톨릭 인간학의 정점이자 가톨릭 정통의 기준이 됩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구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보편적인 구원 뜻을 성취하기 위해 마리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신 데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성육신의 행위는 오직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이 마리아로부터 인간 본성을 취하시고, 그 본성을 당신의 신성 안에 유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의 인간적 본성은 철학적 추상이나 단순한 생물학적 출산의 도구, 심지어 수동적인 도구도 아닌, 자유로운 인격체의 영적인 본성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피아트'(명령에 따르다)는 군대에서처럼 상급자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따르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의 자유로운 동의, 즉 ‘합의’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구원을 이루어내는, 압도적이지 않은 사랑 안에서 그분의 은혜의 위대함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아들의 부활을 통해 당신의 구원 뜻을 이루시되, 한 여인의 자유로운 동의에 맡기심으로써 온 인류의 구원을 그녀의 순결하고 모성적인 마음에 맡기셨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피아트’(하느님의 뜻대로)를 거부했다면, 우리는 모두 영원히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모한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마리아를 택하셔서 당신 아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로부터 보호받았으며, 이는 아들을 통한 세상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자유로운 ‘예’는 두 가지 동등한 가능성 사이에서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사랑의 실현이었으며, 그 사랑은 그녀를 성신과 혼인 계약을 맺게 했고, 바로 신부로서 마리아를 하나로 묶어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여 그분을 태중에 모시고 낳게 되리라는 천사의 알림을 받은 마리아는, 미리 받은 은총과 아담의 죄에서 벗어난 상태에 힘입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마리아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얻은 자유 안에서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뜻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적 성취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마리아의 몸과 뜻 안에 육화되도록 하신 분도 바로 성신이시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종말론적 은총을 통해 마리아를 모든 은총을 받아들이는 동정녀이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 만드신 분도 바로 성신이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리아는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에 원죄로부터 구원받으신 마리아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태중에서 그녀의 자유로운 ‘예’라는 응답을 통하여 우리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인격 안에서, 그리고 구원받은 모든 인류를 위한 원형적인 방식으로, 은총과 본성의 새로운 일치를 나타냅니다. 은총은 본성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을 신성화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의 선함과 영광을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인간 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는, 그 인간 본성이 그분의 신성과 위격적 일치(hypostatic union)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 부르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속자이시며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십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 또한 성육신의 신비에 대한 자신의 본질적 협력을 통하여 구원 사업과 불가분의 관계로, 그리고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성육신에 본질적인 방식으로 협력하였기에, 이는 또한 그녀가 온 인류를 대표하여 성자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 협력한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아들 곁에 서 있었고, 그녀의 영혼은 칼에 찔렸습니다.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께 자신을 바치신 그 몸은 바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그 몸입니다.
4. 하와-마리아 대조 유형론
메시아적 구원은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믿음, 그리고 하느님의 성육신이 그녀의 태중에서 일어나도록 허락한 마리아의 의지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바오로 사도의 아담-그리스도 모형에 따라 하와의 불순종(즉, 자발적인 믿음의 결여)과 마리아의 순종과 믿음을 대조하게 합니다(루카 1:38; 창세기 3; 로마서 5:19). 하와는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나, 마리아는 순종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참으로 ‘산 이들의 어머니’ 이십니다. 죽음이 남자와 여자, 곧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인류에게 들어온 것처럼, 생명 또한 남자이신 그리스도와 여자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인류에게 주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새로운 인류의 신앙 역사, 곧 믿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신약의 교회의 역사 한가운데 그 출발점으로 서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동정녀로서 교회의 전형이 됩니다. 또한 마리아는 교회의 본질을 유형론적으로 구현하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말씀 선포와 구원 사명을 수행하면서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새로운 지체들을 낳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는 교회의 신비와 사명을 미리 보여 주는 원형적 형상이며, 교회의 모성과 신앙의 본질을 드러내는 전형입니다. 성육신의 관점에서 발전된 구원 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동반자이자 조력자(socia Cristi)로 나타나며, 따라서 교회와 인류에 대해 그들을 위해 중재하고 돕는 자(adiuvatrix)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협력은 새로운 인류의 시조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리아는 구원을 받는 교회의 편에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과 자신의 모범을 통해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도록 협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 즉 그리스도와 교회의 인격적 관계, 그리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인격적 관계가 표현되는 관계에 따른 것입니다(에페소 5:23 참조).
하와의 불순종이라는 신학적 개념은, 이미 <성 유스티노 순교자>와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증언되듯이, 일반적으로 마리아의 순종과 믿음에 대조되어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리옹의 성 이레네오>에게서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것들 가운데 가시적으로 오셨다. 그분은 당신께서 붙들어 지탱하시는 피조물에 의해 태어나셨다. 그리고 나무(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당신의 순종을 통하여, 나무(선악과 나무)를 통해 저질러졌던 불순종을 총괄적으로 회복하셨다. 또한 남편에게 속한 동정녀 하와가 비참하게 빠졌던 유혹은, 이미 남편에게 속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영광스럽게 선포한 진리에 의해 제거되었다.”
다시 말해,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함으로써 인류의 타락에 이르게 했던 것과는 반대로, 마리아는 천사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세상에 받아들였고, 그 결과 하와의 불순종이 초래한 결과를 되돌리는 구원 역사에 협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천사의 말을 거짓되게 모방한 유혹자의 말에 속아 하느님의 말씀을 어김으로써 하느님에게서 떠나게 된 것과는 달리, 마리아는 천사의 말씀을 통하여 복된 소식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을 세상에 모셔 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와가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이끌렸던 것과는 반대로,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으로 이끌렸습니다. 그리하여 동정녀 마리아는 동정녀 하와의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인류가 한 동정녀를 통하여 죽음에 얽매이게 되었던 것처럼, 또한 한 동정녀를 통하여 해방되었습니다. 이는 동정녀 하와의 불순종이 동정녀 마리아의 순종에 의해 균형을 되찾고 바로잡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첫 인간의 죄는 맏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순종으로 보상되었고, 뱀의 교활함은 비둘기 같은 순수함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우리를 죽음에 얽매어 두었던 결박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자신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는 교부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태중에서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룬 인간의 원형적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은총이 충만하신 분이며, 신앙의 응답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 탁월한 신앙인이십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구원의 열매가 가장 충만하게 실현된 존재, 곧 가장 완전하게 구원받은 분입니다.
5. 마리아 교리의 발전
여기서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근본 개념, 곧 은총과 믿음이 마치 두 개의 초점처럼 마리아 교의사의 출발점을 형성하고 있음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앙 의식 안에서 점차 결정화된 마리아에 관한 신앙 진술들은 단순히 마리아라는 인물에 대한 독립적 관심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의 역사 전반에 걸쳐, 마리아론의 근본 교의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적 인간상(人間像)의 본질적 특징들이 비추어지고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심과 신학에서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Co-Redemptrix) 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도 아니고 감정적 과장도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의 내용 안에 객관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는 진리입니다. 이 칭호는 개신교가 자신의 칭의 교리에 따라 인간의 자유로운 참여 없이 구원을 이해하고, 그 결과 인간 협력의 의미를 축소한다는 이유로 폐기되거나 침묵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칭호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마리아가 이루어 낸 하느님과 인간의 구원 역사 전체의 맥락 안에서 해명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공동 구속자라는 명칭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자직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업에 대한 마리아의 특별하고도 종속적인 협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론적 칭호는 유추적으로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외아들이시지만, 우리 또한 양자됨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 자녀라는 칭호는 성삼위일체 안에서 그리고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아들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보편적인 효력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또 다른 예를 제시합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에게 부여된 구원론적 칭호(디모데전서 2:5)는 오직 그분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러나 사제들(주교와 장로들) 또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새 계약의 대제사장이며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인류에게 구원의 성례를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제와 중재자의 직무를 '일차적이고 완전한'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적이고 준비적인' 방식으로만 수행합니다(『신학대전』, III권, 26항, 1절). 그리고 모든 세례받은 사람은 마리아의 정신에 따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력하도록 부름받았고, 그렇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학의 원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적 명칭을 유추적으로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는 교회 일치 운동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거짓된 화해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본래 의미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그에 대한 올바른 개념적, 언어적 표현의 문제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 교령」이 말하는 ‘진리들의 위계’ 역시 교리들을 중요도에 따라 단순히 서열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각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진리와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그 중심 진리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를 깨닫기를 바라시며, 그 구원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시며, 성육신과 마리아의 신앙적 응답인 ‘피아트(Fiat)’을 통해 마리아를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로 세우신 분이십니다.
"마리아에 관해서는 아무리 찬미하고 묵상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전통적인 원리는,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강조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를 상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리아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이 원리는 오히려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하느님께서 실제 인간 역사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고 마리아가 그 구원 역사 안에서 참된 역할을 맡았다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 진리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가톨릭 신앙은 인간이 진정으로 위대해질수록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에 더욱 깊이 의지하며 그분께로 들어 올려진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이자 교회의 어머니이며 모든 신자의 어머니인 마리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소명을 가장 완전한 모범으로 인식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 이레네우스의 말처럼, “하느님의 영광은 충만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참된 생명은 하느님을 직접 뵈옵는 데 있다”는 진리입니다.
6. ‘공동 구속자 마리아’라는 제목에 담긴 진실
어떤 이들은 해당 칭호가 중세 후기에서야 사용되기 시작했으므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신앙의 진리가 계시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진리를 교회가 후대에 개념적으로 정식화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는 사도 시대부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 신앙을 고백해 왔습니다. 다만 이 신비가 "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다"는 신학적 공식, 즉 위격적 결합이라는 용어로 명확하게 표현된 것은 수 세기 후의 교의 발전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과 하느님의 어머니 되심도, 그 절대적인 기원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신 데 있으며, 그 시작은 원죄의 오염에서 벗어난 잉태에 있고, 그 완성은 마리아가 육신과 영혼을 함께 지닌 채 하늘로 들어 올려진 성모 승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든 진리가 신앙의 유기적 통일성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비추어 주듯이, 마리아 교리 역시 서로 독립된 교리들의 임의적인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단 하나의 구원 신비에서 흘러나온 통일된 표현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진리이며 생명이시고, 마리아는 그 신앙의 완전한 모범으로서 모든 신자와 함께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모송 해설」에서 “마리아는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신 분이시다”라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마리아는 세상에 축복을 가져왔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바다의 별’이라는 뜻을 지닌 마리아라는 이름은 그녀에게 매우 잘 어울립니다. 항해자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안전한 항구에 도달하듯이, 그리스도인들 또한 마리아의 인도를 따라 하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내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허락받으셨다.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을 위한 큰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셨다. 하지만 지금 내 어머니께 가해지는 가증스런 행위들과 모욕들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슬프다. 오직 하늘의 아버지의 원수들만이 이 진리를 너희에게서 빼앗으려 한다. 너희는 어머니의 말씀을 막아서는 안 된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너희를 구원하려는 공동구속자이시며, 그렇기에 너희를 다시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으신 분이다. 어머니 없이는 너희는 길을 잃을 것이다.”
- 베이사이드 메시지 중
예수님, 1974. 8. 5
번역: 성 미카엘회 회장 송 바울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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